고려청자가마터

 

고려청자는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도자기사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대구면은 전라북도 부안의 보안면 유청리와 함께 고려청자 생산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는 180여 군데의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우리 나라 전역에서 발견된 옛 가마터가 400여군데 인 것에 비춰 볼 때 이곳은 우리 나라 도자기 생산의 본바닥이었다고 할 만하다. 가마터들은 정수사 근처에서부터 남서로 비스듬히 흘러 강진만으로 들어가는 용문천을 따라 밀집해 있는데, 이 일대의 가마터들에서는 고려청자가 처음 만들어지던 때의 것으로부터 화려한 전성기를 거쳐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 고려청자의 발전과정 전반에 걸쳐 만들어졌던 모든 기법, 기형, 색깔의 청자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대구면은 땔감으로 쓰는 나무와 질 좋은 도자기 흙이 풍부했고, 가마를 만드는 데 적당한 경사지가 있었으며 제품을 운반하는데 뱃길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청자의 주 생산지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이곳은 위치상 월주요 등 중국 남방요 도자 기술의 영향을 받기 쉬운 곳이었다. 길 사정도 좋지 못했던 때에 청자를 수레에 싣고 덜그럭거리며 나를 수는 없었으므로, 뱃길이 있느냐 없는냐는 요즘 생각하기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물론 여기서 만들어진 청자들은 개경과 강화도의 고려 지배층에게 납품되었다. 이후 우리 나라 도자의 주류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분청사기, 백자로 이어진다. 대구면의 청자 가마터들은 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사당리 당전마을 가마터 안에 있는 강진요에서는 600년 동안 단절되었던 청자의 맥을 이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