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당

 

     녹우당 전경

해남 윤씨는 연안 이씨, 여흥 민씨와 함께 해남 땅의 큰 성씨로서 명문으로 꼽힌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시조 작가인 고산 윤산도와 그의 증손이며 선비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가 이 집안에서 난 사람이니, 녹우당은 그들의 자취가 밴 옛집이다.
집을 향해 들어가다 보면 마을 어귀쯤 되는 곳 오른쪽에 나지막한 둔덕이 꾸며져 있고, 대문 앞에는 높이 30m에 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집 앞쪽 너른 터 양쪽에는 이 집안에 전해오는 유물들을 전시한 전시관과 유물관리소가 있다.
녹우당은 전라남도에 남아 있는 민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다. □자형을 이루며 안뜰을 둘러싼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행랑채가 여러 동 있고 집 뒤편 담장 너머에 삼신재단이 있으며, 그 동쪽에 해남윤씨의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과 윤선도의 사당이 있다. 집 전체의 규모 60여칸 가운데 집주인보다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소용되는 공간이 더 넓어서 대지주 계층의 살림살이를 보여준다. 사적 제167호이다.

▲녹우당의 유래
윤선도는 42세 되던 인조 6년(1628)에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스승이 되었는데, 봉림대군은 나중에 효종이 된다. 효종은 즉위한 후 어린 시절의 스승이였던 윤선도를 위해 수원(水原)에 집을 지어 주었다. 1660년에 효종이 죽자 윤선도는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수원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 왔다. 그것이 지금 녹우당의 사랑채이다. 지금은 해남윤씨 종가 전체를 통틀어 녹우당으로 부르고 있으나 원래는 그 사랑채 이름이 녹우당(綠雨堂)이다.
※참고로 녹우당의 현판은 옥동 이서의 글씨이며 그의 글씨는 동국진체의 원조이     다.

 
 

▲윤두서의 대표작이자 우리 나라 회화사상 가장 뛰어난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 국보 제240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