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서원

위 치 :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7, 378번지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뒤를 감싼 가운데 평지에 자리잡은 필암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의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의 공간, 그밖에 장서 공간이나 지원 시설 공간 등 조선시대 서원의 기본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서원이다. 이곳은 호남 지방의 유종(儒宗)으로 추앙 받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와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고암 양자징(鼓巖 梁子徵, 1523∼1594)을 배양하고 있다. 김인후 선생이 죽은 후 30년이 지난 선조 23년(1590), 호남의 유림들은 그의 도학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살고 공부하며 제자를 가르쳤던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祠宇)를 짓고 그의 위패를 모셨다. 이것이 1597년 정유왜란 때 소실되자 인조 2년 (1624)에 김인후 선생이 태어난 황룡면 증산동에 다시 사우를 지었다. 현종 3년(1662)에는 유생들의 요청에 따라 '필암' 이라는 액호를 하사받고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서원의 입지 조건이 수해를 입을 우려가 있었으므로 현종 13년(1672)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어졌고, 1786년에 양지징도 함께 모셔졌다. 그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패 때도 다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른다.
덧붙여 곽연루 정면에 나붙은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며, 필암서원 동재와 서재에는 역시 송준길의 글씨로 진덕재와 숭의재라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숭의재 옆으로 인조가 하사한 묵죽판각(墨竹板刻)이 소장되어 있는 자그마한 경장각이 있다. 또한 경장각의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라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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