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사찰의 건축 양식적 특징
시대적 배경 : 660년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는 무열왕 7년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나, 외부세력인 당나라를 몰아낸 676년에야 삼국 통일을 이루게 된다. 
 

건축양식 : 1탑식 가람배치를 따른 삼국시대의 양식과는 달리 통일 신라 시대의 가람배치는 2탑식 가람 배치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불탑의 의의가 감소하면서부터는 다소 격식을 벗어난 직교형이 이어졌다. 중기에는 선종의 성행으로 산지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산지가람으로 변하게 된다. 화엄사의 가람배치를 보면 평지 2탑식이 산지 가람으로 변천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탑식가람배치도와 2탑식 가람배치도

사찰의 종류 :

*평지가람 : 사천사지 / 망덕사지 / 감은사지 / 고선사지 / 천군리절터 / 불국사 / 실상사
*산지 가람 : 화엄사/ 보림사 / 법주사 / 해인사 / 범어사

 
시대적 배경 :소수림왕에 이르러 찾은 내정 확립으로 고구려는 발전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고, 372년(소수림왕2년) 秦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건축문화의 효시를 이루게 되었다. 당시 전진에서 승려 순도가 오고, 동진에서는 승려 아도를 보내오자 소수림왕은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건립해, 불교 포교를 도왔다. 왕권 유지를 위한 불교는 이후 민간 신앙과도 결부되어 질병과 재앙에서 개인을 구제하고 나라를 번영케 해주는 현세적인 종교로 변화해 널리 융성하게 되었고, 고구려 문화에 있어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건축양식 :불교가 전래된 초기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성문 관아의 건물을 임시 사원으로 썼기 때문에 신축하는 대규모의 절 건축은 궁궐 건축의 형식을 본따서 지은 것이다. 이러한 배치는 상오리 절터와 일본의 飛鳥寺의 경우에서도 확인된다. 고구려 후기의 사찰 건축양식의 변화는 상징적인 배치 방법과 기념성에 치중하는 건축에 대한 사고방식은 점차 퇴화하고, 건물의 기능성과 공간성을 중요시하게 되는 중심 위치에는 실제로 유효한 기능을 가진 금당을 세우고 그 주변에 회랑을 두어 사방의 매개 건물을 연결한 폐쇄된 중심 공간을 형성하는 배치 형식으로 변천하게 되었다. 

오성좌에 따른 궁궐과 청암리 절터 배치

사찰의 종류 :이불란사(국내성에 창건) / 금강사(문자왕7년-청암리) / 중대사 / 진구사 / 연복사 / 영탑사 / 육왕사 / 원오리 만덕사지(평남 평원) / 정릉사지(고구려 427년-평양시 역포구)

시대적 배경 : 384년 침류왕 원년에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새로운 관념체계와 사찰건축문화의 새로운 발전의 장을 열게 되었다. 호승 마라난타에 의해 전수된 불교는 건축예술의 사상적 근원을 형성하였다. 북쪽으로는 낙랑과 대방군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며, 서쪽으로는 황해를 건너 동진, 송, 제, 양, 진 등의 영향을 받아 문화가 발달
하였고, 성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는 불교 문화는 일본에 백제문화를 전하는 계기가 된다.

건축양식 : 백제의 가람 배치는 주로 평지 1탑 가람 배치로 되어 있다. 이 배치법은 불교가 백제에 처음 도입된 이후 중국이나 인도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와 알맞게 혼성되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여 군수리 절터, 금강사지, 정림사지등이 모두 이와 같은 배치법이고, 백제의 공인들이 건축한 일본의 飛鳥寺도 이에 속한다.건축양식의 2대 종류 중의 하나인 주심포 계열의 건물로 되어 있으며 기둥에는 심한 배흘림이 되어 있다. 주두에는 굽받침이 있고 굽의 곡면이 안쪽으로 되어 있고 첨차 끝은 우아한 곡면으로 소로의 굽곡선과 잘 어울리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첨차 밑곡선에 구름 무늬가 새겨져 있는 구름첨차雲村木라는 것과 오다루끼 華木라고 하는 초단 서까래 상부에 2출목째의 소로를 얹어 포를 짜고 다시 상부 서까래를 걸고 있는 하양구조라는 것이다. (사찰의 전체 배치의 중심에는 중원에 규모가 큰 목탑터와 금당터를 동남향으로 일직선상에 배치하고 그 주위에 회랑터가 있는 미륵사지가 있다. 그외의 대부분의 사찰의 가람배치는 중문,탑,금당,강당이 동서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중문과 강당을 연결하는 회랑이 탑과 금당을 둘러싼 형식을 하고 있다.)

                                    미륵사지 배치도

사찰의 종류 : 대통사(527년 성왕5년-공주) / 왕흥사(600년 법왕1년~634년 무왕 35년) / 칠악사 / 오합사 / 천왕사 / 도양사 / 백석사 / 미륵사 / 호암사 / 사자사 / 북부 수덕사 / 전주 보광사 / 익산 오금사 / 전주 경복사
*현존하는 백제의 사찰 ; 익산 미륵사지 / 부여 정림사지 / 군수리,동남리 절터 / 부여 금강사지 / 공주 서혈사지/금산사/내소사/수덕사/개심사/선운사/갑사

시대적 배경 :지증왕시대에 처음으로 신라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삼국 중에서 불교를 가장 뒤늦게 받아들여서 법흥왕 15년(528년)에야 공인되었다. 왕국의 사상 통일의요구와 왕권 강화를 위해 호국적 성질을 띤 불교는 왕실과 국가의 비호로 차차 성장하게 되었다.
비록 가장 늦게 전파되었지만 외국과의 빈번한 접촉이 적은 이유로 오히려 고구려나 백제보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양식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건축양식 :  금당과 탑을 중심으로 좌경루, 남문, 회랑이 있었고, 신라시대 사찰의 초석밑의 하부 구조는 대체로 건물 기단구축을 한 다음 초석밑을 깊고 넓게 파서 積心石을 차곡 차곡 쌓아 견고히 다져 비교적 평평한 초석을 앉힌 형식을 취하였다.

가람배치도

사찰의 종류 : 흥륜사 / 영흥사 / 황룡사 / 기원사 / 실제사 / 분황사 / 영묘사 /화엄사/쌍계사

시대적 배경 :고구려의 부흥을 꿈꾸던 즈음 만주의 동부 지역을 거점으로 고구려의 지배계급과 말갈족의 피지배계급으로 구성된 발해가 건국되었다. 발해의 정치, 사회, 문화는 고구려 문화 위에 당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하게 형성되었다. 통일 신라와 더불어 남북극시대를 이루었다.

건축양식 : 불교 문화도 크게 융성하였으며, 그 양식은 직선적이면서 소박한 고구려의 예술 양식을 원천으로 하였다. 발해의 정전은 속칸과 겉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속칸의 북쪽 중심에는 불상이 있었고 그 주변에 소상들이 있었으며 불상 앞에 불공 장소가 있었다. 즉, 발해의 정전은 크고 작은 실들을 결합시켜 하나의 건물을 이루었다.
(사각 지붕의 단층 건물의 상경 용천부 제1절터는 기능이 다른 본채와 부속채가 하나 의 건물안에 결합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통 기와와 함께 녹유를 바른 귀면 8개, 치미 등으로 이루어진 제9절터는 겹지붕으로 되어 있다.

상경 용천부 제1절터

사찰의 종류 : 상경 용천부 / 동경 용원부 / 서고성 연해주 지방 등지의 사찰

시대적 배경 : 고대 사회에서 중세 사회로 전환되는 918년 왕건의 고려 건국과 더불어 후삼국을 통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936년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루게 된다. 건국 초부터 호국 불교의 성격을 부각시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중기에는 의천에 의한 천태종이, 후기에는 지눌에 의한 조계종이 성행하였다. 고려 시대 예술은 불교와 귀족 생활이 연관되어 크게 발전 하였다.

건축양식 : 한국 목조건축 양식 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는 주심포와 다포 양식이 정착되었으며, 개경의 만월대 궁궐과 현화사, 흥왕사가 그 예가 되겠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 건축의 주심포 양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장중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말의 석왕사 응진전은 원의 영향을 받은 다포식으로, 중후하고 장엄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고려 시대의 가람양식은 통일 신라 시대의 2탑식 가람 배치를 계승하였고, 삼국 시대의 1탑식 가람 배치도 함께 사용하였다. 

                                           흥왕사 배치도

                               불일사 배치도


고려 시대의 불교 융성은 민간 신앙에 의한 샤머니즘적인 요소와 통합되어 종래의 가람 양식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금당이 대웅전, 능인보전, 나한보전으로 이름이 바뀌고, 칠성각, 응진전, 영산전, 산신각등의 건물이 새로이 생겨 났다. 그리하여 후기의 건축은 평지에 자유로이 배치를 가진 것이 많이 세워졌다. 어두운 공간에서 밝은 공간을 만날때 느끼는 극적 효과를 노려 중문을 누형식으로 만들고 누 아래에 있는 계단을 통하도록 하였다. 

사찰의 종류 : *919년(태조 2년) ; 법왕 / 자운 / 왕륜 / 문수 / 원통 / 내제석 / 사나천선원 / 신흥 / 지장 
*기록상의 사찰 ; 광통 보제사 / 흥국사 / 불일사 / 개국사 / 만복사 / 현화사 / 영통사 / 사자빈신사 / 정투사 
*현존하는 사찰 ; 안동 봉정사 극락전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예산 수덕사 대웅전 / 강릉 객사문 / 부석사 조사당 / 심원사 보광전 / 석왕사 호지문, 응진전 

 
 

시대적 배경 : 1392년 조선의 건국과 함께 새로운 국가 체제의 정비가 일단락되어, 왕권이 강화되고 양반 관료 중심의 지배 체제가 정비되면서 국가 재정이 충실해졌다. 조선 사회의 문화는 유교주의에 입각한 양반 문화와 불교, 도교, 토속 신앙이 융합된 서민 문화로 구성 되었으나, 성리학의 발달로 미술, 건축, 공예 등 문화를 향유 하는 계층은 주로 양반
이었다.

건축양식 : 조선 시대 사찰 건축의 배치는 자유로운 듯 하면서도 엄격한 질서가 숨어 있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중정이 형성되며 평면은 정사각형이고 그 크기는 환경에 맞도록 면적이 정해져 있다. 대체로 중정을 중심으 로 남북 방향에 문루, 대웅전이 대치하고, 동서로는 강당과 승방이 있 는데, 중심인 대웅전을 보조하는 형식으로 배치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통도사 배치도

사찰의 종류 : 은혜사 거조암 영산전 / 무위사 극락전 / 도갑사 해탈문 / 송광사 국사전 / 장곡사 상대웅전 / 개목사 원통전 / 청평사 회전문 / 개심사 대웅전 / 신륵사 조사당 /
관룡사 대웅전 / 통도사 대웅전 / 법주사 팔상전 /봉정사 대웅전 / 금산사 미륵전 / 화엄사 각황전 / 전등사 대웅전과 약사전 / 환성사 대웅전 / 개암사 대웅보전 / 내소사 대웅보전 / 쌍계사 대웅전 / 해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