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白羊寺)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北下面) 약수리(藥水里) 백암산(白巖山)에 있는 절.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631년(무왕 32)    창건자 : 여환

소재지 :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


 

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다. 631년(무왕 32) 승려 여환(如幻)이 창건하고, 고려에 들어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한 후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다.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백양사라 이름하였다.

건물로는 환양이 세웠다는 극락전(極樂殿:지방유형문화재 32)이 가장 오래되었고,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43)은 1917년 백양사 중건 때 지은 것으로, 석가모니불 ․보살입상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건립한 사천왕문(四天王門:지방유형문화재 44)과 1896년경에 세운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이 밖에 백양사 재건에 힘쓴 소요(逍遙)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소요대사 부도(浮屠)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치되어 있는 9층탑이 있다.


 

백양사 대웅전 (白羊寺大雄殿)

 1974년 9월 24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다. 본존불상을 모신 법당인데, 1917년 송만암(宋曼庵) 대종사가 백양사를 5중창하면서 건립하였다. 건물 자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전통적인 건축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불전 안에는 본존인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협시인 문수보살․보현보살이 좌우에 있다. 불단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불을 봉안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형 법당으로, 건축양식은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2단의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에 중앙으로 계단을 두었고, 자연석 주초를 놓았다. 기둥은 민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 창방과 평방을 결구하고, 그 위에 간포 2조씩의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안쪽이 3출목, 바깥쪽이 2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내진칸과 외진칸에는 높이를 달리한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툇간에는 용모양의 퇴량을 걸쳤다. 지붕의 4모서리에는 원형의 활주가 세워져 있다. 창호는 전면은 모두 4분합 빗살문을 달았고, 측면은 3칸 모두 2분합 띠살문을 달았다. 후면의 어칸에도 2분합 띠살문을 달았다. 주간포는 전면에 2구씩 배치되었고 양측면에는 중앙칸은 1구, 앞칸은 2구, 뒤칸은 2구를 놓을 자리에 1구만 배치하였다.


 

▷ 백양사 극락보전 (白羊寺極樂寶殿)

 1972년 8월 7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백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574년(선조 7) 승려 환응이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따르면 백양사 극락전불 양계서의ꡐ문정왕후빈향축열서(文定王后賓香祝列書)ꡑ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건물을 짓는 데 문정왕후가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판에ꡐ극락보전(極樂寶殿)ꡑ이라고 씌어 있는데, 이 글씨는 동국진체라 여겨진다. 극락보전 안에 봉안된 후불탱화도 진경풍속화의 사실성을 가진 우수한 탱화이다. 이로 보아 조선 영조․정조 때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기본구조는 낮은 석조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으로 처리한 원기둥을 세웠다. 구조양식은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안쪽이 3출목, 바깥쪽이 2출목인 다포양식을 취하고 있다. 가구(架構)는 2고주 7량의 구조를 하고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양쪽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단색으로 담담하게 처리하였다. 외부에서 보면 창호는 정면 가운데 칸에 빗살 3분합문을, 양옆 칸에 정자(井字)살 3분합문을 달았다. 맞배지붕이면서도 다포집으로 가구를 한 절충식 건물이다.


 

백양사 사천왕문 (白羊寺四天王門)

 1974년 9월 24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는데, 송만암(宋曼庵)이 백양사 5중창 당시 건립한 것이다. 사천왕문은 일주문과 불이문의 중간에 있는데, 사찰과 외부세계와의 경계인 일주문을 지나, 진리의 세계를 상징하는 불이문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속세를 벗어나 신성한 사찰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천왕은 불국의 사방을 진호하며, 국가를 수호하는 신이다. 즉 동쪽에 지국천왕, 서쪽에 광목천왕, 남쪽에 증장천왕, 북쪽에 다문천왕이 지키고 있다. 이들은 각각 두 장군을 거느리고 있는데 위로는 제석천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을 지배한다. 이 옹호신은 불법에 귀의하는 중생을 수호하며, 호세안국을 수행하면서도 모든 악귀와 잡신을 억압하여 정법도량을 수호하는 존엄한 위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정면 가운데 칸은 사찰의 통문 역할을 하고, 좌우 협칸에는 사천왕상을 안치하였다. 장대석 기단 위로 막돌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로는 이익공을 두고, 외1출목의 첨차(3포 이상의 집에 있는 꾸밈새)도 가졌다. 이는 익공식과 주심포식을 병용한 절충식이다. 내부의 천장은 가운데 중보 위로는 우물천장을, 전후면으로는 빗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사용하고, 서까래와 부연(附椽)을 설치한 겹처마이다.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한 맞배지붕이다. 사천왕문도 한말 대웅전 증축과 함께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라남도 지방의 사천왕문에 구례군의 화엄사(華嚴寺)와 장흥군 보림사(寶林寺)에 뛰어난 작품들이 있다. 이는 백양사의 사천왕문과 함께 사찰문화재로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백양사 소요대사부도 (白羊寺逍遙大師浮屠) 

 1974년 12월 26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2년 9월 25일 보물 제1346호로 승격되었다. 조선 전기의 승려 태능(太能:호 소요)의 묘탑으로, 대사가 입적한 1650년경에 건조되었으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이다. 규모는 높이 158cm, 지름 100cm, 둘레 285cm이다. 형식은 8각의 기단부에 8판복련으로 장식하고, 이들이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범종처럼 상대와 하대를 갖추고, 하대에는 뱀․용․거북․원숭이․개구리․게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부도의 장엄미를 보이고 있다. 탑신부 중앙에 문모양을 조각하고, 그 안에 소요당(逍遙堂)이라고 당호를 음각하였다. 그 옆으로는 9개의 유두가 돌출되었고, 이러한 유곽이 4면에 같은 식으로 배치되었다. 유곽 밑으로는 하늘을 나는 두 마리의 용을 장식하여 한층 장엄하게 보인다. 상륜부는 탑신과 같은 돌로 조성되었는데, 범종의 형태로서 4개의 용두와 그 사이에 구름 모양의 문양을 각출하고 그 위에다 여의보주를 올려놓았다. 태능은 13세 때 백양사 불도에 입문하였고, 부림에게 불경을 배운 후 휴정에게 신지를 깨쳤다. 태능의 부도는 백양사 이외에 지리산 연곡사(燕谷寺)와 담양군 용추사(龍湫寺)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