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02b.gif 전남 답사지역 연혁 star02d.gif

                                                 

                                                                                                                             

 square53_gray.gif  전라남도에 대하여

   - 한반도의 남서단에 있는 도.


면적 : 1만 2036㎢

인구 : 205만 4204명(2002)      인구밀도 : 171명/㎢

가구수 : 73만 1092(2002)

행정구분 : 5시 17군 31읍 198면

도청 소재지 : 광주 동구 광산동 13

도의 꽃 : 동백꽃    도의 나무 : 은행나무    도의 새 : 산비둘기


 전라남도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고려시대에 해양도로 불리다가 현종 9년인 1018년에 와서 해양도와 강남도(전북)가 합쳐져 전라도라 불리우게 되었다. 전라남도는 한반도 서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소백산맥의 높은 봉우리로 경남과 경계로 서쪽은 노령산맥의 구릉성 저산지로 전북과 경계로 있다. 동고서저와 북고남저의 형태의 지형으로 동쪽이 북쪽에 비해 고산성이며 남서해안은 리아스식해안 도서는 1970개로 전국도서의 62%를 차지한다. 

 하천은 서남부 및 서북부의 광대한 평야를 유역에 형성시켜 비옥한 농토를 제공하고 목포만으로 유입하는 영산강과 전북에서 발원하여 전 남북의 동부산 악 지대를 흘러내리고 있는 섬진강, 장흥군과 강진군유역을 흐르는 탐진강으로 삼분 되며 우리도의 평야는 영산강 유역의 나주평야가 전북의 호남평야와 더불어 우리나라 굴지의 곡창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전남의 기후는 해안 및 도서지방과 내륙 산악지대에 있어 기온의 차이가 크며 해안선이 길고 바다에 접한 면적이 많기 때문에 대체로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지만 내륙산악지대는 연안지방 과는 현저한 차이로 기후의 교차가 크고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기후는 남해안형과 남부내륙형 남부서안형등 3개의 기후지역으로 나누어지며 남해안형은 전남의 남해안과 경남의 남해안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기온이 가장 높고 1월 평균기온이 0~2℃ 이며 강수량은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200~1,500mm의 분포를 나타내며 남부내륙형은 기후는 소백산맥의 동서 양사면에 나타나는 기후형으로 년평균 기온은 11~13℃ 이며 8월의 평균 최고기온은 31.2℃ 에 이르고 강수량은 1,100~1,200mm이다.

 

 기온은 남부서안형 기후지역은 서해안 호남평야와 나주평야 지역으로 겨울철에 북서계절풍에 개방된 지역으로 황해의 한냉한 습기를 받는 기후 지역으로 년평균 기온은 12~14℃ 이며,1월의 평균기온이 1~2℃ 로 온화한 편이고 강수량은 1,000~1,200mm정도이고 겨울철에 강설량이 비교적 많고 겨울철과 봄철에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흐린날이 많아 년평균 운천일수가 140일에 달하고 쾌청일수가 60일 정도 밖에 안된다.

 

 전남의 기온 일교차가 가장 심한 달은 광주지방이 4월의 12.9℃ 이고 목포지방이 10월의 9.5℃ 여수지방이 3월의 7.5℃ 였으며 일조시간은 광주지방이 2,378시간, 목포지방 2,25시간, 여수지방이 2,378시간이며 평균일조량은 광주지방 54%,목포지방 51%,여수지방 55%로 나타나고 있다. 전남의 강설기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사이로 최다적설기록은 1946년 12월 10일 목포지방의 56.1cm,1976년 12월 29일 함평지방 37.5cm있다. 바람은 겨울에는 서북풍, 여름에는 남풍이 불고 있으며, 기압은 대체로 12월에 가장 높고 7월에 가장 작게 나타나고 있다. 전라남도의 연혁은 1896.08. 전라도가 남북 2도로 분할되어 전라남도가 창설되었으며 도청을 광주군에 설치하였고 1946. 08. 제주도를 도로 승격, 분리 하였고 1981. 07. 나주군 나주읍 일원과 영산포읍 일원을 통합하여 금성시를 설치하였으며 1986. 01. 여 천출장소를 여천시, 금성시를 나주시로 명칭 변경하였고 1986. 11. 광산군 송정읍이 송정시로 승격,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 본 도와 분리하였고 1988. 01에는 송정시와 광산군 전역이 광주직할시로 편입하였고 1989. 01. 광양출장소가 동광양시로 승격하였다. 1995. 01.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순천시, 나주시와 나주군을 통합하여 나주시, 동광양시와 광양군을 통합하여 광양시로 하였고 1998. 04.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을 통합하여 여수시로 하였다. 현재는 5시,17군,31읍,198면,69동,32출장소의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전라남도의 면적은 12,036 (㎢)이며 인구는 2002년 12월31일 기준에 따르면 한국인 약 2백만명 외국인5천명이 살고 있으며 총인구 2104052명이 살고 있으며 약 728천세대가 살고 있다.

 

 전라남도의 인구 중 36.0%는 비경제 활동 인구이며 64.0%의 경제 활동 인구가 이고 서비스업을 하는 인구는 55.1% 차지하며 농림어업을 하는 인구는 35.0% 차지한다. 가장 많이 재배 되고 있는 작물은 미곡이 83.0% 차지하며 다음으로는 맥류가 11.7% 차지한다.


 전라남도는 해양의 관문으로 국제 물류·교역의 적지(목포∼상해 671㎞)이며 다도해, 리아스식해안, 갯벌 등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전통관광자원을 보유하여 해양관광 개발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해양관광 자원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1981년 12월 23일 우리나라의 1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이 2344.91㎢ 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으로 한국 최대의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부터 거문도, 나로도, 완도, 보길도, 진도, 도초도, 비금도, 흑산도, 홍도 등 160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랜 해식으로 기암괴석의 해식애(海蝕崖), 해식동(海蝕洞)등 특이한 해안지형이 발달하였으며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무성한 난대성 식물이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신라시대에는 장보고(張保皐)가 당(唐)과 왜(倭)의 해적떼를 토벌하여 해상왕국을 건설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송(宋)·원(元)·왜와 통상하던 해상무역의 중심 수역으로 신안군 앞바다는 송·원대의 도자기 매몰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이 왜적을 격파했던 전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여러 개의 섬 중에서도 홍도와 흑산도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며, 특히, 흑산도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어장이 있다.

 전라남도에서 열리는 축제는 3-12월까지 열리는데 모두 33개의 축제가 열린다.



 ♧ 전라남도 지역개관

  - (장성, 광주, 담양, 화순, 영암)

    (강진, 해남, 장흥)

    (순천, 구례)


  ▷ 장성

  규모→전라남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동쪽은 담양군, 서쪽은 영광군, 남쪽은 광주 함평군과 접하며, 북쪽은 전북 순창군․정읍시․고창군과 접한다. 호남지방의 중추 거점도시이자, 한국 5대 도시인 광주광역시와 인접하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권으로써 광주광역시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지역이다.

 주요지역과 도로간 거리는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부산광역시?정읍시?담양군은 호남고속도로로 연결되고, 고창군․영광군․목포시 등 전라남도의 서남지역은 국도로 연결되었다.

노령산맥의 지맥이 마지막 기세를 부리면서 북서 및 남동쪽 경계를 이루고 남서쪽은 함평군으로 개방되어 있다. 북서쪽 경계 부근의 입암산(654m), 불대산(630m), 방장산(743m), 문수산(620m) 등의 높은 산이 전라북도 및 영광군과 천연의 장벽을 이루고 노령(276m), 솔재(290m), 정재(216m) 등 몇 개의 재를 통하여 전라북도의 여러 고을과 연결된다.

 역사→삼한시대 마한의 구사오단국, 고랍국, 임소반국으로 추정되고 있다. 757년 백제의 고시이현, 소비혜현, 구사진혜현으로 불리다가 신라(경덕왕 16) 고시이현은 갑성군으로, 소비혜현은 삼계현으로, 구사진혜현은 진원현으로 개칭하였다.

940년 고려시대에 갑성군을 장성군으로 개칭하였고, 장성군과 삼계현은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다. 진원현은 나주목에 예속되었다. 조선시대에 현감을 두었으며 1914년 진원군을 병합하였다.

 진원은 본래 백제의 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이었는데 신라 때 진원으로 고쳐 갑성군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나주에 예속되고 조선시대에는 현감을 두었으며 1895년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장성군에 합쳐졌다. 1936년 장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5년 장성댐 건설로 북상면이 폐지되었고, 1983년 남면 삼태리 일부가 광주광역시로 편입되었다. 2001년 현재 장성읍․진원면․남면․동화면․삼서면․삼계면․황룡면․서삼면․북일면․북이면․북하면 등 1읍 10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문화재→ 군내의 문화유적지에 입암산성, 장성향교, 필암서원, 봉암서원, 고산서원, 원덕미륵석불 등이 있다. 관광명소에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대한 조계종(18교구 본사) 고불총림 백양사와 난대성 상록침엽교목으로 북방한계선인 백암산 일대에 5,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153호 비자나무 숲이 있다. 비자나무는 서양에는 없는 것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식지로 원산지는 중국이고 제주도를 비롯한 전라남도의 해남, 장흥, 고창 선운사 인근에 자생하는 나무이다. 다른 지방의 비자나무가 씨눈이 1개인 것과는 달리 이곳의 비자나무는 씨눈이 2개인 것이 특징이다. 북하면 쌍웅리의 장성호 관광지는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군내의 대표적 관광명소이다. 또한 1999년부터 홍길동 생가터로 알려진 황룡면 아곡리 부근을 중심으로 홍길동 테마파크를 연차별로 추진, 건설하고 있다. 북하면 월성리 저수지 앞에는 홍길동 우드랜드가 세워져 체력단련과 삼림욕을 위한 휴양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이 밖에도 학바위와 쌍계루, 신기한 방울샘, 방장산휴양림, 축령산휴양림 등이 있다. 삼계면 화산리 대화관광농원은 56만 평 규모의 관광농원으로서 800평 규모의 숙박시설, 방갈로, 관광식당 등 편의시설과 수영장, 축구장, 배구장과 농구장 등 각종 스포츠 시설들이 갖추어진 자연과 조화를 이룬 관광휴양지이다. 삼계면 월연리에는 애플관광농원이 조성되어 있어 사과잎 따기, 사과 돌려주기, 사과수확, 사과품평회 등의 월마다 각종 행사가 열린다. 2001년 현재 보물 1점, 천연기념물 1점, 사적 4점 등의 국가지정문화재가 있고, 문화재자료 14점과 유형문화재 15점, 기념물 5점 등의 도지정문화재가 있다. 주요문화재에 사적 제242호인 황룡면 필암서원에 소장된 노비보(奴婢譜) 등의 일괄 문서가 보물 제587호로 지정되어 있고, 북하면 단전리의 느티나무는 전라남도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되어 있다.


▷ 광주

 광주는 빛의 고을이다. 광주라는 명칭은 고려태조 23년(940)에 처음으로 쓰여졌지만 그 연유는 아는바 없고, 다만 여말의 대석학자이자 3은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이 「석서정기」에서 "光之州"라고 하여 빛의 고을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이 비록 한자의 뜻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지만 목은과 같은 대학자가 상식적으로 자의해석만 했을리 만무하고 그렇게 해석할 만할 연유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나 그 연유까지는 밝히지 않았다.

 빛은 곧 광명(光明)이다. 이 광명이념은 우리 민족의 고유신앙이요, 원래의 정신이며 기본 철학이다. 광주는 태양의 도시이며 광명의 도시요, 빛의 고을이다. 우리는 조상대대로 태양을 바라보며 광명을 향하여 오늘까지 살아 온 것이다. 그러한 정신은 지난날 민족이 어려움에 봉착했을적마다 꿋꿋하게 이겨냈던 원동력이었으며 빛나는 역사의 주체적인 힘이 되었다. 그리하여 빛 고을 사회 전반에 걸쳐 민족혼의 상징으로서 전통처럼 면면히 계승 되어져 오고 있다.

 *연혁*

 ①마한시대

 광주지방에 사람이 살았다고 믿어지는 시기는 마한시대로 추측된다. 위지동이부한숙에 의하면 마한의 지역중 광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구사조단국과 불이지국을 들 수 있는데 구사조단국은 장성군 진원면 일대로, 불이지국은 나주일대로 보고있다.

 

 ②백제시대

 백제는 고조선이 망한 후에 남하하여 온 유이민집단이 한강유역에 정착하여 점차 주변 부속국들을 통합하면서 그 세력을 확장한 마한54국중의 하나인 백제국에서 일어난 삼국의 하나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백제의 군현은 모두 147개소라 하고 있다. 전남지역의 군현은 중·동·남·서·북 오방의 하나인 남방 구화하성(장성·구례의 이설)에 속하였는데 이 무렵의 광주지역은 무진주이며 직할 3현인 미동부리현(남평), 복룡현(나주일대), 굴지현(창평)을 통치하였으며 전남지역에는 13군 42현이 있었다.

 

 ③통일신라시대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 군현의 행정조직을 정비한 것은 경덕왕 16년(754)의 일이며 이 때에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그 아래에 군현을 두었다. 양주에 금해경, 한주에 중원경, 삭주에 북원경, 웅주에 서원경, 전주에 남원경의 5경을 두었고 이 당시 전남지역은 남원경에 속한 무주이며 15군 32현을 관할 하였다.

 

 ④후삼국시대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서남해안의 방수패장으로 있다가 진성여왕 6년에 무진주를 점거하고 부근 군현을 빼앗아 완산주(전주)에 진군하여 도읍을 삼고 후백제왕이라 자칭했다.

 ⑤고려시대

 고려 태조 19년에 견훤의 아들 신검이 항복함으로써 후백제가 멸망하였으며 태조 23년(940)에 무진주를 광주로 개편하고 동시에 도독부를 두었다.

 그 후 성종 14년에 관제개혁이 있었는데 전국을 3경 4도호부 10도로 나누는 동시에 12주목을 12주절도사로 변경하였고 이 개혁으로 전라남도를 해양도라 했으며 도호부를 안남(현재 영암)에 설치하였고 광주에는 자사를 두었다.

 

 ⑥조선시대

 전라도에는 좌도·우도가 있었는데 광주는 좌도에 속해 있었다. 세종 12년 읍인 노흥즌이 목사 신보안을 구타하였다는 죄과로 목을 주로 강등하여 무진군이라 개칭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문종 원년에 다시 복칭되었다가 성종 20년 광산현으로 강등되고 연산군 7년에 복호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인조 숙종대에도 이와 비슷한 불미한 일로써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복구되는 사례가 있었다.

 

 ⑦일제시대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의 새로운 지방제도에 따라 광주에 읍장을 두었는 바, 그 당시의 광주는 성벽안을 성내면이라 했고 성외에 기례방·공수방·부동방의 3방이 있었기 때문에 1면 3방을 합병하여 광주면이라 호칭하였다. 1931년 4월 1일에는 지방제도의 개정에 따라 광주읍으로 승격시켰다가 1935년에는 다시 부정을 실시 광주부로 고쳤다. 이때 행정구역은 41개 정으로 확장되었다.

 

 ⑧대한민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패망하자 주둔 미군에 의한 군정이 2년 11개월동안 실시되다 1947년 6월 3일부로 군정청이 폐지되고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광주부는 1949년 광주시로 바뀌면서 두차례의 행정구역 변경이 있은 뒤, 1963년에는 서창·대촌출장소가 다시 광산군에 환원되어 시 관할 구역은 214.92㎢로 좁혀들고 6개 출장소와 45개 동이 되었다.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설치에관한법률"이 공포되어 부산·대구·인천에 이어 네번째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이때만해도 3구 72개동으로 행정구역 면적은 215.11㎢에 불과했으나 1988년 1월 1일 법률 제3963호 공포로 송정시와 광산군 전역이 다시 광주직할시에 편입됨으로서 면적은 501.20㎢로 크게 늘어나고 4개구 83동 9출장소를 관할하는 서남권 중추관리기능도시로서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995년 3월 1일 서구에서 남구가 분구되었고 1998년말 현재는 5구 86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 담양

 규모→면적 455.09㎢, 인구 5만 5089명(2001)이다. 동쪽은 전라남도 곡성군, 서쪽은 장성군, 남쪽은 화순군과 광주광역시, 북쪽은 전라북도 순창군과 접한다. 1읍 11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청소재지는 담양읍 객사리이다

 역사→조선시대의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와 창평현(昌平縣)이 1914년 병합된 곳이다. 봉산면 무정면 이북지역은 대체로 옛 담양도호부 영역이고, 창평면․고서면․대덕면․남면․수북면 등 남부는 옛 창평현 지역에 해당한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담양과 창평은 군이 되어 남원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에 속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창평군의 두입지(斗入地)인 갑향면이 장성군에 편입되었다. 봉산면 제월리 등 담양군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이 지역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또 화순 등 인근지역에서는 청동기 및 철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조선시대 1758년(영조 34) 추성지는 지금의 무정면 일대를 삼한시대의 술지현(述只縣) 자리라고 전하고 있다. 백제 때의 27개 군 200개 성 중에서 추자혜군을 말하며 지금의 창평면은 전라남도 동북쪽에 위치하여 굴지현(屈支縣)에 속하였다. 금성산성과 담주산성도 200개 성 중의 하나인 듯하다. 조선시대의 추성지는 금성산성이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추자혜군에서 추성군으로 개칭하였다. 백제 때의 율지현(栗支縣)은 율원현(栗原縣)으로 바뀌어져 추성군에 속했다. 창평은 기양현(祈陽縣)으로 개칭하여 무주(현 광주)의 영현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 추성군을 담주라 개칭하고 도단련사를 두었다가 1018(현종 9) 담주 도단련사를 없애고 담양군이라 개칭하였다. 동시에 율원현 및 창평현과 함께 무주(현 광주)에서 나주로 소속되었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1391년(공양왕 3)에는 원율현(현 금성면 원율리)을 병합하였다. 조선시대 때 국사 조구의 고향이라 하여 1395년(태조 4)에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담주에서 담양으로 개칭되어 도호부가 되었다. 그러나 1728년(영조 4)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府) 331군(郡)으로 나눌 때 남원부(南原府) 관할하에 있었으며, 1905년(광무 9)에 담양부를 담양군으로 고치고 1908년(순종 2)에 폐지된 옥과군 일부가 담양군에 합하여졌다. 1914년 군면폐합 때 창평군이 폐지되고 군내 12개 면이 5개 면으로 폐합되어 담양군에 병합되었다. 이때 광주군의 갈전면, 대치면과 장성군 갑향면이 대전면으로 개칭되어 이관됨으로써 담양군은 13개 면으로 조정되었다. 1918년에는 무면(武面)과 정면(貞面)이 무정면으로 통합되고, 구암면을 봉산면으로 개칭하여 12개 면이 되었다. 1931년 구암면을 봉산면으로, 1932년 무면과 정면을 합하여 무정면으로 개칭했다. 1943년 담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1년 10월 1일자로 담양군 동리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제2호), 담양군 이장정수조례(제3호)를 각각 제정공포하여 1읍 11면 139리를 관할하였으며, 1973년에 담양호와 광주호 건설로 용면 산성리와 청흥리가 수몰됨으로써 2개 리가 줄어 137개의 법정리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1년 현재 담양읍과 봉산면,고서면,남면,창평면,대덕면,무정면,금성면,용면,월산면,수북면,대전면 등 1읍 11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문화재→담양군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관광, 문화, 교육도시로서 전형적인 전원도시이다. 문화시설로는 공공도서관, 공연장, 군민회관, 청소년회관, 가사문학관, 죽물(竹物)박물관, 경기장 등이 있다. 특히 2000년 10월에 완공된 가사문학관에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 및 친필 유묵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담양문화원에서는 매년 5월 군민의 날에 민속경연과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전해지고 있고, 들독놀이․풍작놀이․초군놀이 등의 민속놀이가 전한다. 관방제 주변의 고수부지를 이용한 3만㎡의 추성경기장이 군내 유일한 경기장이며, 명칭은 담양의 옛 지명인 추성을 땄다. 죽향축제는 선비정신과 죽세문화를 테마로 한 전국축제이다. 1999년부터 시작한 축제로 군민의 날인 5월 10일을 전후로 대나무를 테마로 하여 열린다. 길놀이 행사와 함께 추성경기장에서는 체육행사와 민속경기가 펼쳐지고, 죽세공예단지와 유채꽃단지에서 대나무 조형물 만들기, 죽림욕, 죽향가요제, 딸기아가씨 선발대회 등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담양향교.창평향교.송강서원.의암서원.대치서원 등이 있다.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은 1908년 규장각에서 일하던 고정주가 세운 창흥학숙과 영학숙(지금의 창평초등학교)이 있다. 1907년 담양향교의 이규담이 세운 광명학숙은 1909년 담양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었으며, 지금은 담양동초등학교이다. 2001년 현재 교육기관은 담양대학을 비롯하여 초등학교 15개교(분교 3개교), 중학교 7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유일한 군립도서관인 담양공공도서관은 1997년 12월 31일부터 담당교육청이 운영하고 있으며, 군민의 교육, 문화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수북면에 있는 성암 청소년야영장, 무정면의 충의교육원은 국민정신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2001년 현재 종교기관으로는 개신교 교회 58개소, 천주교 성당 5개소, 불교 사찰 28개소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병원 1개소, 의원 20개소, 치과의원 5개소, 한의원 6개소, 보건소 1개소, 보건지소 11개소, 보건진료소 11개소 등이 있다. 복지시설로는 아동복지시설 4개소가 있으며, 음악과 국악 관련 예술단이 2개 있다.


▷ 화순

 규모→면적 786.23㎢, 인구 7만 8610명(2001)이다. 동쪽은 곡성군과 순천시, 서쪽은 광주광역시와 나주시, 남쪽은 보성군과 장흥군, 북쪽은 담양군과 접해 있다.

 역사→원래 화순은 백제의 잉리아현(仍利阿縣)으로 신라시대에 여미(汝湄)로 고치고 능성군(綾城郡)의 영현(領縣)이 되었으며, 능주는 백제시대에 이릉부리군이라 불리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능성(綾城)으로 지명을 바꾸었다. 동복은 백제의 두부지현(豆夫只懸)이었는데 신라시대에 동복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인 1405년(태종 5)에 동복을 폐하고 화순에 합하여 복순(福順)이라 개칭하고, 1416년에는 각각 분리하여 현을 만들었으며, 1895년에 화순이 군이 되고, 1914년에 능주 동복의 양군을 합하였다. 1963년 1월 1일 화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3년에 동면 수만리가, 1983년에 도곡면 주도리가 각각 화순읍에 편입되었다. 1999년 묵곡(墨谷) 용강(龍江) 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01년 현재 화순읍 및 한천면,춘양면, 청풍면, 이양면, 능주면, 도곡면, 도암면, 이서면, 북면, 동복면, 남면, 동면의 1읍 12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화순군에는 화순읍과 광주를 잇는 너릿재 터널이 양방향으로 뚫리고 4차선으로 확장되어 광주의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15번 국도가 보성벌교로 연결되고 29번 국도를 통하여 능주를 거쳐 이양,장흥,보성으로 이어진다. 철도는 호남선에서 분기된 경전선이 군내를 통과하여 보성으로 연결되며 화순에서 복암(福岩)에 이르는 11.1km의 탄광철도인 화순선이 있다. 화순군에는 2001년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11점, 도지정문화재 19점, 문화재자료 14점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57),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170), 쌍봉사 대웅전(보물 163), 운주사 9층석탑(보물 796),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797),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798), 화순 운주사지일원(사적 312) 등이다. 화순, 남평으로부터 천불탑(千佛塔)과 와불(臥佛)로 유명한 운주사로 이어지는 도로가 확장포장되고 인근에 화순온천이 개발되고 있어 관광객의 왕래가 급속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이양면 증리(甑里)에 있는 쌍봉사는 국보로 지정된 철감선사탑,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등이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동복호에 의해 일부가 수몰되었지만 기암절경을 자랑하는 물염적벽이 있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고인돌은 ICOMOS(Internatioa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국제기념물유적회의)를 통해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영암

 규모→면적 544.48㎢, 인구 6만 5268명(2001)이다. 동쪽은 장흥군, 남쪽은 해남군 ․ 강진군, 북쪽은 나주시와 접한다. 남동쪽 군계(郡界)를 중심으로 월출산(月出山)이 천황봉(天皇峰:809m)을 최고봉으로 구정봉(九井峰),사자봉(獅子峰) 등 많은 봉우리를 일으키면서 기암절벽을 이루는 외에 국사봉(國師峰:613m),흑석산(黑石山:650m),주지산(朱芝山:491m) 등이 곳곳에 있다. 월출산의 줄기에 밤재[栗峙],감재,도갑재[道岬峙] 등이 있어 장흥,강진,해남으로 연결된다. 군의 북서부에 영산강(榮山江) 하구가 열리고, 삼포강(三浦江),영암천(靈岩川),도갑천(道岬川),송계천(松溪川) 등 작은 하천들이 영산강으로 흘러들어 좁은 평야들을 형성하는데 평야에 많은 관개용 저수지가 축조되어 농경지가 발달하였다. 해안선은 복잡하고 나불도(羅佛島),외도(外島) 등 섬들이 있으나 영산강하구둑 공사로 현재 육지와 연결되었다. 연평균기온13℃, 1월 평균기온 1.4℃, 8월 평균기온은 26.0℃이고, 연강수량은 1,593.4mm이다.

 역사→영암군은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월내군(月奈郡)이라 하다가 통일신라시대에 영암군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 낭주군(朗州郡)이라 개칭하였다가 다시 1096년(현종 9) 영암군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 나주 관할인 금정면(金井面),시종면(始終面)이 편입되고, 1914년 11개면으로, 1979년 5월 1일 영암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1년 현재 영암읍, 덕진면, 금정면, 신북면, 시종면, 군서면, 도포면 ,서호면 ,학산면 ,미암면, 삼호면의 1읍 10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문화재→나주시로부터 13번 국도가 남으로 뻗어 영암을 통과해서 해남, 완도까지 이어지고 강진군과의 경계 부근인 성전에서 목포~순천 방향의 2번 국도와 십자로 교차하여 동서와 남북으로 교통이 편리하다. 영암읍과 광주와의 시간거리는 1시간대에 불과하나 철도교통은 없다. 2001년 현재 국가지정 문화재는 총 13점으로 국보 2점, 보물 7점, 사적 1점, 천연기념물 1점, 중요민속자료 2점이 있다. 지방지정문화재는 총 45점으로 유형문화재 9점, 기념물 17점, 민속자료 8점, 문화재자료 11점이 있다. 주요 관광지는 198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이 이 지방 제일의 관광지이며 월출산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는 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국보 50)이 있는 도갑사(道岬寺), 월출산마애여래좌상(月出山磨崖如來坐像:국보 144), 왕인박사유적지(王仁博士遺蹟地), 장천리선사주거지(長川里先史住居址), 월출산 온천 등이 있으며 영산강 하구에는 농업박물관과 각종 위락시설이 있는 영산호 국민관광지가 있다.


▷ 강진

   -『강진』은 백제시대에 도무군의 도강과 동음현의 탐진이 영합된 지역으로 도강의

    "강"자와 탐진의 "진"자를 합해 강진으로 호칭.

 *연혁*

(백제시대-도무군) →(통일신라시대- 양무군) → (고려시대-도강군) →(조선시대-병영설치)→ (1895-강진군) →(1930.7.1-강진면 “읍”승격) → (1983.2.15-신전출 장소 “면”승격) → (1989.4.1-마량출장소 “면”승격) →(1990.8.1-해남군 옥천면 봉황리 일원 도암면 편입)

 *역사속 인물*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는 1762년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현재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아버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씨 와 어머니 해남윤씨 사이에 4째아들로 태어남. 1783년 22세 되던 봄에 소과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성.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중용을 가르침. 그러다가 28세가 되던 1789년에 과거시험 문과에 2등 급제함.

  과거시험 합격 후 경기도 암행어사, 병조참의(정3품) 부승지(종4품)를 지내며 배다리 발명, 화성 설계․축조, 거중기 발명 등으로 정조로부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12년 동안 정조를 보좌함.

 1800년 정조가 돌아가시고 1801년 순조가 즉위하면서 세력쟁탈을 위한 사색(노론,소론,남인,서인) 당파싸움에 휘말려 남인을 제거하기위한 천주교 탄압사건인ꡒ신유사옥ꡓ(또는ꡒ신유박해ꡓ)이 일어남.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당시 천주교리를 공부한 이승훈, 청나라 주문모 교리, 이가환, 셋째형인 정약종 등 남인세력이 사형을 당하고, 본인 다산은 경상북도 장기(영일)로, 둘째형 정약전은 완도 신지도(섬)로 유배를 가게됨.

 당시 다산 선생님의 사상(思想)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개혁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현재 실학사상)인지라 당시 왜세를 배척하고 불교문화와 유교사상을 장려하는 세도의 권력에 탄압됨

 동년 11월 황사영(약현의 사위)이란 조카사위가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를 탄압하는 사건들을적어 중국(청) 주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써 보내려다 발각이 됨. (황사영 백서사건이라 함.) 이로 인하여 본인 황사영은 사형을 당하고 약용과 약전형님이 공범으로 지목받아 서울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고 혐의사실이 없음을 인정받고도, 둘째형 정약전은 흑산도로,본인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되어 (1801년 당시나이 40세) 18년동안의 유배생활이 시작됨.  읍내 동문안 주막에서 5년을 거주하였고(당시 관의 감시가 심함- 주막 담장을 철거했고, 현감(군수)의 동향보고가 수시로 이루어짐).

고성사 보은산방에서 1년(제자6명, 장남을 가르침), 목리 이청이란 제자집에서 2년, 모두 8년을 읍내에서 지내시고, 1808년 봄에 귤동마을 외족인 윤단씨의 배려로 이곳 초당으로 이거하여 10년동안 생활을 하게 됨.  초당에서 생활하시면서 후학을 가르치시고 제자 18명과 함께 500여권의 책을 저술함(다산이 초안을 작성하면 제자들이 기록을 했다고 함.) 1818년 당년 58세에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미완성된 책을 마무리 하면서 여생을 보내시다 1836년 당년 75세로 생을 마침.


▷ 해남

 *연혁*

 선사시대 - 신석기시대 후기에 즐문토기인이 현산면 두모리에 출현

         - 삼한시대에 마한 54국중 소위건국등 4~5개의 마한소국세력 성립 

 삼국시대 - 백제성왕 16년(538년)새금현,고서이현,황술현 설치 

 통일신라시대 - 경덕왕 16년(757년) 3현의 이름이 침명,고안,황원으로 개칭됨 

 고려시대 - 태조 23년(940년) 침명현을 해남현, 고안현을 죽산현으로 개칭하고 황원현은               황원군으로 승격 

 조선시대 - 태종 9년(1409) 진도와 해남을 합하여 해진군으로 함

          - 세종 19년(1437) 진도와 해남을 나누어 해남현을 복설하고 치읍을 현재의 해              남읍으로 옮김 

          - 고종 32년(1895) 전국 행정개편되고 따라 해남현이 나주부 해남군으로 승격

          - 1896년 다시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하고 부근도서를 완도군으로 이속 

현대 - 1914년 해남 인접지역을 병합하여 13개면으로 개편

     - 1955년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1읍 12면)

     - 1983년 북평면을 나누어 북일면 신설 1읍 13면으로 편제 - 1992년 현재 1읍 13          면513리로 편제

 *문화유산*

- 충무사 →충무사에 세워진 명량대첩비는 조선 숙종 때 충무공이 정유년(1597) 9월 16일 우수영 울돌목에서 거둔 명량대첩을 기록한 것인데 비문은 숙종 때 대학자 예조판서 이민서가 짓고 당대의 명필(名筆) 판돈령부사 이정영이, 홍문관 대제학 김만중이 전자로 써서 숙종 14년 3월에 문내면 동외리에 건립했다,

- 고분 →고분이 삼국시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파악하는 지표가 되는 것처럼 해남문화 또한 고분을 통해 그때의 문화 사회상을 파악해보는 중요한 깃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해남 또한 그것이 강력한 왕의 무덤은 아닐지라도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한 한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하는 고분이 산재해 있다.

- 옹관묘 →해남의 옹관묘는 초기 소위건국(素魏乾國)의 기내인 송지면 군곡지역(군안골 미아리)과 구전 선선국 기내인 장고산고분(長鼓山古墳) 주변지역 사라소국(紗羅小國)의 기내인 삼산면(시등.원진.봉학)과 해남읍(남송리)지역, 그리고 삼산면 옹관의 연장선상에서 발견된 화산면(花山面) 부길리(富吉里) 옹관이 있다.

- 패총 → 패총(貝塚)은 일명 조개무덤이라고도 한다. 조개껍질이 지닌 석회질(石灰質)로 해서 그 안에 있는 토기(土器)․석기 및 짐승의 뼈․뿔 등을 잘 보전하여 고고학상 귀중한 연구자료가 된다

- 봉수대 →해남에는 금강산 봉수지(해남읍 금강산), 좌곡산 봉수지(북일면 내동리 봉대산), 달마산 봉수지(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갈두산 봉수지(송지면 갈두리 사자봉), 관두산 봉수지 (화산면 관동리 관두산), 황원 봉수지( 문내면 고당리 일성산), 금성산 봉수지(산이면 금호리 금성산)등 7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심정암→해남지역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한 의병들이 일본군에 의해 대량 살상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곳이 대둔사(대흥사) 심적암이다.


▷ 장흥

 면적 617.96㎢, 인구 5만 3392명(2001)으로, 동경 126°47′~ 127°02′, 북위 34°25′~ 34°52′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보성군, 서쪽으로 강진군․영암군, 북쪽으로 화순군에 접하고, 남쪽으로 다도해 ․ 보성만에 면하며, 완도․고흥반도 등과 접한다.

 군의 북부에 제암산(779m)․가지산(506m)․국사봉(613m) 등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배열되어 대체로 높은 지세를 보이고, 남쪽에도 고래로 황장봉산이라고 알려져 온 명산 천관산(723m)이 있다.

 전라남도 3대 하천의 하나인 탐진강이 북부를 남류하다가 장흥읍에서 강진군으로 흘러나가고, 그 밖에 정자천 ․ 금강 ․ 신월천 ․ 고읍천 ․ 남성천 등이 흘러 유역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그 중 장흥읍을 중심으로 한 탐진강 유역의 천산평야가 가장 규모가 크고, 대덕읍 부근에는 간척지 평야가 있다.

 대체로 온화한 남안기후구에 속하여 연평균기온 13.2℃이고, 1월 평균기온 1.7℃, 8월 평균기온 24.3℃ 이다. 북부 산악지대의 지형성 강우로 인하여 연강수량이 1,326mm에 달한다.

 *연혁*

 원래 백제의 오차현으로 신라 때 오아현로 개칭되어 보성군에 속해 있다가 고려시대 영암에 소속되고, 인종 때 장흥부로 승격되었다. 1265년(원종 6)에 회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장흥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5) 장흥군이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폐합에 따라 웅치․회천 2개면이 보성군에 이관되었으며, 1936년 11월 1일 부동면을 장흥면으로 개칭하고, 남상․남하 양면을 용산면으로, 고읍면을 관산면으로 개칭하였다.

 1942년 7월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하고, 1980년 12월 1일 관산면이 관산읍으로, 대덕면이 대덕읍으로 승격하였다(3읍 6개 면). 1986년 4월 10일 대덕읍에서 회진면이 분할되어 3읍 7개면이 되었다.

 2001년 현재 장흥읍 ․ 관산읍 ․ 대덕읍 ․ 용산면 ․ 안량면 ․ 장동면 ․ 장평면 ․ 유치면 ․ 부산면 ․ 회진면의 3읍 7면으로 행정구역이 이루어져 있다.


▷ 순천

 면적 1,224km2. 인구 약 10만(1944). 동쪽은 맹산군과 성천군, 서쪽은 평원군과 안주군, 남쪽은 강동군과 대동군, 북쪽은 개천군과 덕천군에 접한다.

 군의 북동부는 동부 산지에서 연속된 삿갓봉[笠峰]을 비롯하여 산악이 중첩되어 있으나 남부와 서부는 낮은 구릉성 산지로 석회암층으로 덮여 곳곳에 카르스트지형이 발달하였다. 군의 중앙부에는 대동강이 관류(貫流)하고, 남쪽 구릉지에는 장선강(長鮮江)이 흘러 유역에 비옥한 충적평야를 전개시키고 있다.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특히 겨울은 추위가 심하다. 연평균 기온은 9.3℃, 1월 평균기온이 -10.1℃, 8월 평균기온이 24.3℃로 연교차 35℃에 달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4mm이다.

 *연혁*

 원래 순천(順川) ․자산(慈山) ․은산(殷山)의 3군을 합한 군으로, 그 중 순천은 고려시대 때 정융군(靜戎郡)이라 하였는데 983년(성종 2)에 순주방어사(順州防禦使)를 두었다. 그 후 1257년(고종 44)에 덕주(德州)에 통합되었다가 후에 분리하여 지군사(知郡事)로 하였으며, 1413년(조선 태종 13)에 순천으로 고쳤다.

 또 자산은 본래 고려시대 때 문성군(文成郡)으로서 939년(태조 22)에 태안주(太安州)로 고치고 983년(정종 2)에 자주방어사(慈州防禦使)를 두었으며 후에 지군사로 고쳤다. 그 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413년(태종 13)에 자산군으로 고치고, 1505년(연산군 11)에 본군을 폐하였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복구하였으며, 1914년에 순천에 통합되었다.

 한편, 은산은 본래 고려시대 때 흥덕군(興德郡) 또는 동창군(同昌郡)으로 불렀던 것을 983년(성종 2)에 은주(殷州)로 고치고 은주방어사를 두었으며, 1231년(고종 18)에 몽골군의 침입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몽골 병란 후 성주(成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1391년(공양왕 3)에 감무(監務)를 두고, 1414년(태종 14) 자산군에 속하였다가 이듬해 분리하여 현감(縣監)을 두고 은산이라 고쳤으며,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했으나 1914년 자산군과 함께 순천군으로 통합되었다.

 

▷ 구례

 면적 443.01㎢, 인구 3만 3588명(2001)이다. 북쪽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남쪽으로 광양시와 순천시, 동쪽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으로 곡성군과 접한다. 1읍 7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구례읍 봉남리 51번지이다.

 북동부의 넓은 지역이 지리산 서쪽 사면을 차지하기 때문에 지세는 전체적으로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룬다. 동쪽에 지리산의 지봉(支峰)인 노고단(1,507m)․황장산(942m) 등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는 만복대(1,433m)․대두산(775m), 서쪽에 곡성군과의 경계지대에 천마산(658m)․깃대봉(691m), 남쪽에 서롱산․백운산(1,218m) 등이 솟아 있으며, 그 고준한 산지 중앙부에 자리한 구례분지는 사방이 병풍으로 둘러쳐진 것 같은 전형적인 산간분지를 이룬다.

거의 전역에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변성암이 분포하는데 생성 연대가 오래된 변성 편마암류가 대부분이며, 군의 남서부에는 퇴적암이 분포한다. 특히 지리산 편마암 콤플렉스라고 하는 변성암류가 지리산을 중심으로 거의 전역을 덮고 있다. 신라층군 하부 퇴적암은 토지면 간전리의 섬진강 연안에 극히 소규모로, 능주층군 퇴적암은 문척면 중앙에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다.

 비교적 급경사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평야는 서시천을 따라 광의면 대전리․대산리․지천리와 용방면 신지리․용정리, 마산면 갑산리․냉천리 등 일부지역에만 분포한다. 구례읍 봉동리․원방리, 토지면 금내리, 간전면 간문리 부근의 섬진강 유역에 형성된 구례분지는 동서 4km, 남북 8km의 넓이를 가지며, 비교적 비옥하다.

 남부 내륙형 기후로 연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다우지역을 형성하며 지역의 평균 고도가 높고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철과 겨울철의 기온차가 크다. 연평균 기온은 12.2℃로 1월 평균기온 -1.3℃, 8월 평균기온 25.1℃, 연평균 강수량은 1365.5mm이며, 연강수량의 53.4%가 6~월에 집중되어 있다.

 군을 상징하는 꽃은 철쭉, 나무는 산수유나무, 새는 산비둘기이다.

 *연혁*

 백제의 구지차현(仇知次縣) 또는 구차례현(仇次禮縣)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구례현(求禮縣)으로 고치고 곡성군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남원부(南原府)에 속하였고, 1143년(인종 21) 감무를 두었으며, 1413년(조선 태종 13) 현감을 두었다. 1499년(연산군 5) 현을 폐하고, 부곡을 만들어 남원부에 속하게 하였다가 1507년(중종 2) 다시 현으로 부활시켰다.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시켜 남원부 관할에 두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광무 10) 남원군의 산동․중방․소의․고달면 등 4개 면이 병합되었다. 1961년 행 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1년 현재 구례읍 및 문척(文尺)․간전(艮田)․토지(土旨)․마산(馬山)․광의(光義)․용방(龍方)․산동(山洞)면의 1읍 7면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