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雙磎寺)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花開面)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840년(신라 문성왕 2)

창건자 : 진감선사 최혜소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최혜소(崔慧昭)가 개창, 처음에 옥천사(玉泉寺)라고 부르다가 헌강광(憲康王) 때 한 고을[州]에 같은 이름의 절이 두 개가 있어 혼동을 일으켰으므로, 문전에 흐르는 쌍계에 연유하여 쌍계라는 호를 하사(下賜)하고 학사(學士) 최치원(崔致遠)으로 하여금ꡐ쌍계석문(雙磎石門)ꡑ의 4자를 쓰게 하여 바위에 각자(刻字)하였다. 그 후 두 차례나 화재로 절이 소실되었으나 1632년(인조 10)에 벽암(碧岩)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에 의하여 복구 ․중수되었다.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대비 및 삼법 두 화상께서 당나라 육조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와서

"지리산(智異山) 곡설리 갈화처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법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어 조사를 봉안하고 옥천사라 이름 하였다. 이후 문성왕 2년 (840년)에 우리 불교 범패 종장이신 진감국사께서 중국 육학을 마치시고 다종자를 가지고 오셔서 이곳 지리산 주변에 심으시고 대가람으로 중창하시니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셨다. 그간에 벽암, 백암, 헙훈, 만허, 용담, 현주지 고산스님들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 보물 2점의 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천왕상, 정상탑, 사천왕수 등 많은 문화유산과 칠불암, 국사암, 불일암 등 속암이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경내에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를 비롯하여 보물 제380호의 쌍계사 부도(浮屠), 보물 제500호의 대웅전 등의 지정문화재가 있고, 이 밖에 5층석탑․석등․일주문(一柱門)․팔상전(八相殿)․명부전(冥府殿)․천왕문(天王門), 중국의 승려 혜능(慧能)의 두상(頭像)을 봉안했다는 금당(金堂)에 있는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과 나한전(羅漢殿)․금강문․칠불아자방(七佛亞字房)․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또한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 신라 성덕왕 때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 10년에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벚꽃이 유난히 많다. 화개서부터 쌍계사까지 이르는 10리 길을 가득 메우고 있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초부터 말까지는 길에 온통 떨어진 벚꽃으로 뒤덮여 있다. 절로 들어가는 10리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가 유명하여 봄이 되면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국도에서 갈라져 쌍계사까지 이르는 10리 벚꽃 길은 화개면에서 쌍계사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경치가 가장 좋다. 절 앞에는 식당과 상점, 민박집들이 가득해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다.


산의 입구인 화계동열 절까지의 6km 거리에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계곡과 맑은 물, 기암과 고목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며,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친필 쌍계석문, 진감선사 태공탑비(국보 47호)를 지나 북쪽 500m 거리의 국사암 뜰에 천연 느릅나무(사천왕수), 또한 동북쪽으로 2km 남짓 거리에 청학봉과 백학봉의 두 계곡을 끼고 있는 높이 60m, 폭 3m의 불일폭포(지리산 8경중의 으뜸) 등의 이름난 곳이 있다.


▷ 쌍계사의 유물


①진감선사대공탑비 (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3.63m, 비신 높이 2.02m, 비신 폭 1m이다. 귀부(龜趺)와 이수는 화강석, 비신은 흑대리석이다. 최치원(崔致遠)의 사산비(四山碑)의 하나로서 비신에 손상은 입었으나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의 귀갑(龜甲)에는 넓은 구획선으로 6각의 귀갑무늬를 간결하고 얕게 조각하였고, 중앙에 높직한 비좌를 마련하고 비신에 맞게 구멍이 뚫려 있다. 귀두(龜頭)는 짧고 환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비신은 전면 우각(右角) 상부에 크게 결락(缺落)된 부분이 있고 균열도 심하여 수리하였다. 이수는 양측을 비스듬히 자른 3각형으로 4면에 용이 있고, 전면 중앙에 사각으로 깊이 판 제액(題額)이 마련되어 '해동고진감선사비(海東故眞鑑禪師碑)'라고 새겨져 있다. 정상에는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 위에 보주(寶珠)를 얹었다. 비문은 최치원의 글씨로서 자경(字徑) 2.3cm의 해서(楷書)이다.


②대웅전 (大雄殿)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건물이다. 쌍계사는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최혜소(崔慧昭)가 개창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건물을 배치한 산지(山地) 가람의 대표적 일례이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이 사찰의 본전이다.


 중앙의 3칸에는 각각 사분합(四分閤)의 빗살문이 달렸고, 상부에는 창방(昌枋) 밑으로 광창(光窓)을 달았으며, 기둥이 그만큼 높아져서 규모도 큰 편이다. 좌우 끝의 두 문은 주간(柱間)을 좁혀 두 짝으로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평방 위에 배치한 공간포(空間包)는 중앙의 3칸은 2개씩이고, 좌우 끝에는 1개씩이다.


 공포의 구성도 내외 모두 삼출목(三出目)으로 처마를 받치게 하였다. 내부는 첨차(遮)가 모두 교두식(翹頭式)이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중앙의 뒷면에 불단(佛壇)을 마련하였고 그 상부에는 정자각형의 닫집을 달아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첨차가 교두식인 것으로 보아 오래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③부도 (浮屠)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8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2.05m, 재료는 화강석이다. 쌍계사는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최혜소(崔慧昭)가 개창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 밖 약 100m 지점의 높은 곳에 있으며, 8각원당(八角圓堂)의 기본형을 한 부도로 지대석은 매몰되어 일부가 노출되어 있고 일부는 손상되었다. 기단의 하대석은 8각으로 연꽃 8잎을 돌렸고, 중대석도 8각으로 각 면에 안상(眼象)이 조각되었다. 상대석의 앙련석(仰蓮石)에도 2단의 받침 위에 연꽃 8잎이 큼직하게 조각되어 하대의 복련석(覆蓮石)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기단 위에는 탑신을 받기 위한 별석(別石)이 삽입되었으며 표면에는 전면에 구름무늬가 양각되어 있다.


탑신은 8각이나 우주형(隅柱形)도 없고 다른 조각도 없다. 옥개는 매우 넓고 추녀는 모서리각에서 위로 들려 있다. 옥상에는 매우 굵은 우동형(隅棟形)이 8줄 뻗어내렸고 추녀 끝에 귀꽃이 표현되었다. 정상에는 꽃모양이 조각된 돌이 앉혀 있고 상륜(相輪)에는 옥개석을 축소한 것 같은 양식의 보개(寶蓋)가 있으며, 높직한 간주(竿柱) 위에 큼직한 보주(寶珠)를 얹었다.


이 부도는 각 부분의 조형에서 형식화의 과정이 뚜렷하며 부재(部材)의 대소 비례도 균형되지 못한 점은 있으나 웅대하고 안정된 감을 주는 작품이다.


④칠불암 (七佛庵)

 칠불선원(七佛禪院) ․칠불사(七佛寺)라고도 한다. 언제 창건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가락국 수로왕의 7왕자가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1568년(선조 1) 부휴(浮休)가 중창하였고, 1830년(순조 30) 김담(金潭)과 그 제자 대은(大隱)이 중창하였다. 1948년 여수 순천사건으로 완전 소실되었다. 오랫동안 재건되지 못하다가 1964년 문수전(文殊殿) ․보광전(普光殿) ․선원(禪院) 등이 중창되었으며, 1982년에 아자방(亞字房)이 복원되었다.


이 아자방은 경남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曇空禪師)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고치지 않았지만 한 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따뜻하였다고 한다.